다음 장면이 뻔히 예상되는데도 끝까지 눈을 못 떼는 영화, 혹시 있으신가요. 이야기가 어디로 갈지 다 알겠는데 심장은 계속 뛰고, 극장 문을 나서서도 그 얘기만 몇 번씩 되감게 되는 그런 작품 말입니다.
저는 그 질문 앞에서 늘 같은 제목을 꺼냅니다. 오늘 이야기할 작품은 2010년 여름의 그 영화, 이정범 감독의 「아저씨」입니다.
혜화동 극장, 어느 주말의 선택
그해 저는 삼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매일 마음이 무겁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주말 하루쯤은 비워둬야 다음 주가 굴러가던 시기였고, 그날도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동네 친구들과 혜화동 극장에서 만나기로 했고, 고른 작품이 「아저씨」였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었습니다. 원래 원빈이라는 배우를 좋아했거든요. 게다가 주변에서 하나같이 정말 재미있다고 밀어붙이던 참이었습니다. 그렇게 기대치 조정이랄 것도 없이 들어간 상영관에서, 두 시간 내내 머릿속에 맴돈 문장은 하나였습니다. 역시 원빈은 원빈이구나. 연기에 대한 분석이라기보다 그냥 감탄이었습니다. 화면에 있는 사람 하나만으로 영화가 굴러가는 경험을, 그때 처음 했습니다.
곧게 뻗는 이야기, 호불호는 갈릴 수 있습니다
먼저 솔직하게 적어두겠습니다. 「아저씨」의 줄거리는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전당포를 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살던 남자가 있고, 유일하게 곁을 내준 이웃집 아이가 사라지고, 그 아이를 되찾기 위해 남자가 움직입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보는 내내 이해가 막혀 멈칫한 대목이 한 군데도 없었고, 결말도 중반쯤엔 대략 그려졌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면서 "아, 그게 그 뜻이었구나" 하고 무릎을 친 순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지점은 취향을 탈 수 있다고 봅니다. 겹겹이 쌓인 복선을 풀어내는 재미를 기대하고 재생 버튼을 누르신 분이라면 아쉬움이 남을 수 있는 구조입니다.
다만 제 쪽에서는 그게 흠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가 복잡했다면 그 감정이 이만큼 진하게 전달됐을까 싶어서요. 이정범 감독이 각본까지 직접 쓴 이 영화는 2010년 8월 4일 개봉해 119분을 달리는 동안 설명 대신 감정 하나만 밀어붙입니다. 최종 관객 수는 628만 2,774명(영화진흥위원회 집계 기준)으로 그해 국내 개봉작 흥행 1위에 올랐는데,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달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은 지금 봐도 이례적입니다. 이듬해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부문 작품상을 받았고, 원빈은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김새론은 대한민국 영화대상 신인여우주연상을 가져갔습니다.
16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몇 초
이 작품을 떠올리면 언제나 한 대목부터 재생됩니다. 김희원 배우가 연기한 인물이 태식을 도발하려고, 아이의 신체 일부라고 믿게 만드는 물건을 바닥에 굴려 보내는 순간입니다. 직접적인 묘사는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물체가 데굴데굴 굴러가는 몇 초 사이에 상영관의 공기가 통째로 바뀌었습니다.
그걸 본 태식의 얼굴이 달라집니다.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대사를 길게 쏟아내지도 않습니다. 이를 악물고 짧은 한마디를 뱉은 뒤, 그때부터 그 공간에 있던 모든 것을 쓸어버립니다. 저는 그 순간이 이 영화의 진짜 출발점이라고 봅니다. 그 전까지 태식은 그저 말수 없는 이웃 남자였는데, 이후로는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으니까요.
그다음부터는 통쾌함이 밀려왔습니다. 아이를 되찾겠다고 혼자서 적진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가 하나씩 부수며 나아가는 전개를, 거의 숨을 참고 봤습니다. 합이 화려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앞에서 충분히 쌓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청룡영화상에서 이 작품이 무술 부문 기술상을 받은 데에는 그만한 근거가 있었던 셈입니다.
낙산공원에서 하루를 다 써버린 날
불이 켜지자 상영관 여기저기서 박수가 나왔습니다. 저희 일행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친구들 전부 원빈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고, 그 상태로 그냥 헤어지기가 아쉬워 근처 낙산공원까지 올라갔습니다.
거기서 하루 종일 영화 이야기만 했습니다. 어느 대목이 제일 좋았는지, 그 대사를 어떤 톤으로 뱉었는지 서로 흉내를 내가면서요. 그러다 나온 결론은 놀랍도록 정직했습니다. 우리도 원빈처럼 잘생겨지고 싶다는 것. 지금 적어놓고 보니 웃음이 나지만, 스무 살 언저리의 남자들이 영화 한 편을 보고 낼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감상이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돌아보면 그해 여름 제게 남은 건 줄거리가 아니라 그 공기였습니다. 시험이 늘 뒤통수에 붙어 있던 시기에, 아무 계산 없이 한 작품 이야기로만 채운 하루. 「아저씨」를 다시 볼 때마다 그 공원의 저녁이 같이 따라옵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영화를 권하는 이유
결말은 예상 그대로였습니다. 아이는 구출되고, 악행을 저지른 이들은 대가를 치릅니다. 권선징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그 점 덕분에 이 작품이 오래 살아남았다고 봅니다.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대신, 지켜야 할 것을 끝내 지켜냈다는 감각 하나를 아주 선명하게 남기니까요. 제가 이 영화를 꺼내드는 이유도 결국 세 가지입니다.
첫 단독 주연작이면서, 지금까지 그가 배우로 모습을 보인 마지막 영화입니다. 한 배우의 정점이 곧 마지막 기록으로 남은 흔치 않은 사례입니다.
그 시절 관객이 무엇에 열광했는지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봅니다. 배우 한 사람이 화면을 장악한다는 말의 의미가 여기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때 저는 늘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를 되찾으러 가는 남자의 이야기, 한국판 「테이큰」이라고요. 그 한마디면 대개 통했습니다.
다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괜히 붙은 게 아니라는 점은 미리 일러두고 싶습니다. 수위 높은 장면이 분명히 있고, 그런 화면에 부담을 느끼시는 분이라면 마음의 준비가 조금 필요합니다. 현재는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왓챠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다시 볼 때마다 재미있는 건, 정작 제 기억에 먼저 떠오르는 게 액션이 아니라 그날 공원에서 웃던 친구들 얼굴이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런 한 편이 있으신가요. 작품보다 그 작품을 함께 본 하루가 더 오래 남은, 그런 영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