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2012) 리뷰: CGV 극장 알바 시절 동료들과 본 영화후기

'범죄와의 전쟁' 공식 포스터

한국 느와르를 세 편만 꼽으라면, 저는 여기를 넣습니다

한국 느와르에서 대표작 세 편만 골라보라고 하면 저는 망설임 없이 이 작품을 그 안에 넣습니다. 뒤에 나온 여러 화제작들이 딛고 선 자리를 먼저 다져놓은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건 스물셋 대학생 때였습니다. 그 무렵 저는 미아동에 있는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습니다. 극장 직원을 부르는 이름이 따로 있었는데, 저희는 미소지기라고 불렸습니다.

그때 직원들에게는 작지만 꽤 괜찮은 혜택이 하나 있었습니다. 상영 시작을 십오 분에서 삼십 분쯤 앞둔 시점에 좌석이 남아 있으면, 그 자리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그 정도 시간이었습니다. 매표소와 상영관 사이를 하루 종일 오가는 사람에게 이건 제법 큰 복지였습니다. 그날도 근무를 마친 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다 같이 상영관으로 들어갔습니다. 유니폼을 벗고 관객석에 앉는 그 기분은, 극장에서 일해본 분이라면 아마 아실 겁니다.

배우가 아니라 진짜 그 세계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는 윤종빈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아 2012년 2월 2일에 선보인 133분짜리 범죄 드라마입니다. 최민식이 비리 세관원 최익현을, 하정우가 부산 조직의 젊은 보스 최형배를 연기했고 조진웅과 마동석, 곽도원, 김성균이 주변을 단단히 받칩니다. 1982년 부산에서 출발해 1990년대 초 정부가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기까지의 십여 년을 따라갑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으로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최종 472만여 명이 관람했습니다.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습니다. 제33회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음악상을 가져갔고 제48회 백상예술대상에서는 영화 부문 대상을 받았습니다. 상 목록만 훑어도 개봉 당시 이 작품이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짐작이 갑니다.

다만 그날 상영관에 앉은 제게 가장 강하게 남은 건 수상 이력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정우가 연기한 최형배가 연기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영 내내 저 사람이 정말 그 세계에서 살아온 게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배우가 인물을 흉내 낸다기보다 인물이 스크린 위에 그냥 존재하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이 작품은 하정우라는 배우가 느와르 장르에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은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이후 한국 느와르에서 화제가 된 작품이 여럿 나왔지만, 순서로 따지면 이쪽이 먼저였습니다. 원조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수갑을 찬 채로 목소리를 높이던 그 장면

아직도 또렷하게 떠오르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최익현이 경찰서에 붙들려 수갑을 찬 상태에서 오히려 목소리를 키우는 장면입니다. 자기가 서장과 함께 목욕도 하고 밥도 먹은 사이라며 상대를 몰아붙이는데, 대사를 정확히 옮길 자신은 없지만 그 기세만큼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짧은 장면 하나가 최익현이라는 인물을 통째로 설명합니다. 그는 주먹이 세지도 않고 조직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사람도 아닙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인맥과 뻔뻔함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두 가지로 수갑을 찬 상황조차 뒤집어버립니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인물이 아니라 관계를 무기로 쓰는 인물이라는 점이, 이 영화를 여느 조직 이야기와 갈라놓는 지점입니다.

상영이 끝나고 나온 평가는 모두 비슷했습니다. 두 배우의 연기에 완전히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쏟아졌고, 각자 맡은 인물을 그대로 살려냈다며 아끼지 않고 칭찬했습니다. 한 번으로는 모자라니 두 번은 더 봐야겠다는 말도 여기저기서 나왔습니다. 하루 종일 극장에서 일하며 온갖 영화가 어떻게 소비되는지 곁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입을 모았으니, 저는 그 판단에 꽤 무게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렇게 살아야 버티는 걸까, 잠깐 흔들렸습니다

솔직히 고백하면, 극장을 나서면서 마음이 조금 복잡했습니다. 최익현은 야비합니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쪽만 골라 움직이고, 필요하면 어제 손잡았던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버립니다. 그런데 끝까지 남는 쪽은 그입니다. 반듯하게 버틴 인물들이 하나둘 무너지는 동안 그는 멀쩡히 걸어 나옵니다.

스물셋의 저는 그 대목에서 잠깐 흔들렸습니다. 세상은 결국 저렇게 사는 사람에게 유리한 걸까. 원칙을 지키는 쪽이 손해를 보는 구조라면 나는 어느 쪽을 택해야 하나.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던 시기였으니 그 물음이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리는 답은 훨씬 분명합니다. 최익현은 야비하지만 동시에 영리한 사람입니다. 목표를 정하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고, 주변 사람은 필요한 만큼만 쓰다가 미련 없이 놓아버립니다. 그 시절의 혼란스러운 환경을 헤쳐 나가는 요령으로만 따지면 확실히 뛰어난 인물입니다. 능력 자체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 기준으로는 거기까지입니다. 만약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저는 관계를 정리하겠습니다. 아는 사이라는 것조차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을 겁니다. 사람을 소모품처럼 쓰다 버리는 방식으로 얻은 결과는, 제가 생각하는 잘 사는 삶과는 거리가 멉니다. 영화가 이 인물을 끝내 미화하지 않고 불편한 자리에 그대로 남겨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지금 대배우가 된 이들의 출발점

이 작품을 다시 꺼내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이름만 들어도 얼굴이 떠오르는 배우들 여럿이, 여기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보면 조연 자리에 앉아 있는 얼굴들이 오히려 더 놀랍습니다.

1
조진웅

경쟁 조직의 김판호를 맡아 존재감을 각인시켰습니다. 이후 여러 작품에서 중심을 책임지는 배우로 자리 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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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동석

김서방 역으로 등장합니다. 지금의 대표작들과 견주어 보면 배우가 걸어온 길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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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곽도원

최익현을 쫓는 조범석을 연기했습니다. 분량이 길지 않은데도 마주 앉은 장면마다 팽팽한 긴장을 만들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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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김성균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입니다. 제48회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 부문 남자 신인 연기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습니다.

한 편의 영화가 이만큼 많은 배우에게 출발점이 되어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개봉 당시에는 최민식과 하정우의 이름값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얼굴들이, 지금 다시 보면 하나같이 눈에 걸립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이 한국 영화계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지 충분히 설명된다고 봅니다.

물론 누구에게나 편한 영화는 아닙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 붙은 만큼 거친 장면이 이어지고, 무엇보다 마음 편히 응원할 인물이 한 명도 없습니다. 시원한 결말이나 따뜻한 마무리를 기대하고 보시면 실망하실 수 있습니다. 그 점은 미리 아시고 고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를 권합니다. 좋은 사람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끝까지 붙들고 보게 만드는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직접 확인해보실 만하기 때문입니다. 유니폼을 벗고 상영관에 앉았던 그날 이후로 제 안에 남은 문장은 하나입니다. 오래 버티는 것과 잘 사는 것은 다른 이야기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