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쫓기고 있습니다. 왜 쫓기는지 모르겠습니다. 쫓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면 안의 남자는 필사적인데, 보는 저는 이 사람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조차 판단할 근거가 없습니다. 넷플릭스 '들쥐'의 초반부는 그렇게 시작합니다. 설명을 아끼는 대신 관객을 계속 헷갈리게 만드는 방식으로요.
이번에는 최근에 혼자 정주행한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초반 세 시간은 올해 본 것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좋았고, 중반부터는 아쉬웠고, 결말은 다시 서늘했습니다. 그 온도 차가 꽤 컸던 작품이라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재생 버튼을 누른 이유: 두 배우의 이름
거창한 계기는 없었습니다. 공개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에 넷플릭스 메인 화면에 떠 있었고, 류준열과 설경구라는 이름이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배우 둘이 한 작품에 들어갔다는 사실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습니다. 사전 정보도 거의 없이 들어갔는데, 돌이켜보면 이 작품은 그렇게 보는 게 맞았던 것 같습니다.
기본 정보를 짧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들쥐'는 2026년 8월 28일 넷플릭스에서 전편 공개된 10부작 시리즈로, 김홍선 감독이 연출하고 이재곤 작가가 극본을 맡았습니다. 카카오웹툰에 연재된 루드비코 작가의 동명 웹툰이 원작이고, 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으면 그 사람으로 변한다는 옛이야기에서 출발했다고 합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라 폭력 수위가 상당한 편이니 이 부분은 감안하고 보시는 게 좋습니다. 성적은 좋았습니다. 넷플릭스 투둠 집계 기준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200만 시청수를 기록하며 글로벌 비영어 시리즈 부문 5위에 올랐고, 이후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 기준으로는 전 세계 TV쇼 부문 4위까지 올라갔습니다.
설명하지 않아서 좋았던 초반부
제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구간은 초반입니다. 정확히는 설경구가 연기한 사채업자 노자가 문재를 집요하게 쫓는 장면들입니다.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는 장면을 하나 꼽으라면 저는 망설임 없이 그 추격을 고르겠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유를 몰라서였습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까지 쫓는가. 정말 죽일 것처럼 달려드는데 어떤 사연이 있는가. 그리고 왜 화면에 같은 얼굴이 둘이나 있는가. 작품은 그 답을 초반에 주지 않습니다. 대신 관객을 계속 헷갈리게 놔둡니다. 이게 흥미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아주 잘 작동했습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정보를 아끼는 연출을 좋아하는 편인데, '들쥐'의 앞부분은 그걸 상당히 능숙하게 해냅니다.
몰입감도 좋았습니다. 1화와 2화를 보면서 든 솔직한 첫 느낌은 '이거 물건이다'였습니다. 긴장감이 촘촘하고, 끊고 나갈 지점을 주지 않습니다. 혼자 보고 있었는데도 다음 화 버튼을 누르는 데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아쉬웠던 지점: 노자가 아군이 된 순간
그런데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제 흥미는 확실히 한 단계 내려갔습니다. 정확한 시점을 짚자면, 노자가 사실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고 문재와 손을 잡기 시작하는 지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초반부의 재미는 두 가지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는 같은 얼굴이 둘이라는 혼란이고, 다른 하나는 노자가 문재를 죽일 듯이 쫓는 압박감이었습니다. 그런데 노자가 아군 자리로 넘어오는 순간, 그 두 번째 축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쫓기던 사람과 쫓던 사람이 한 팀이 되면 화면 안에 남는 위협이 줄어듭니다. 저는 그때부터 긴장의 끈이 눈에 띄게 느슨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준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물론 이야기 구조상 두 사람이 협력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다만 그 대가로 잃은 게 꽤 컸다고 봅니다. 참고로 이 지점은 저만 느낀 게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굿데이터코퍼레이션과 미디어오늘이 함께 진행한 분석에서도 초반 속도감과 두 배우의 연기에는 호평이 몰렸지만 중반 이후로는 반응이 갈렸고, 신분을 빼앗기는 과정의 개연성을 두고 지적이 나왔다고 합니다. 코어는 튼튼한데 뒤로 가면서 흔들렸다는 총평이었는데, 제가 혼자 보면서 받은 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류준열의 1인 2역: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중반의 아쉬움과 별개로, 배우 이야기는 따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류준열은 이번 작품에서 데뷔 이후 처음으로 1인 2역에 도전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을 나중에 알았는데, 알고 나서 오히려 더 놀랐습니다. 보는 내내 두 인물이 같은 배우라는 감각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거든요.
두 인물은 성격이 아예 다릅니다. 하나는 사람을 피해 3년을 숨어 산 인물이고, 다른 하나는 남의 삶에 완벽하게 올라탄 인물입니다. 같은 얼굴로 정반대의 온도를 만들어내야 하는 건데, 이건 웬만한 배우가 소화하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해냈다는 점에서 저는 이 배우가 왜 연기파로 불리는지 새삼 확인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두 인물의 귀 모양을 다르게 세팅하고, 머리를 한쪽은 자연스러운 웨이브로 다른 쪽은 차갑게 뻗은 직모로 나누고, 눈빛의 이질감을 위해 렌즈 끝에 반점까지 넣었다고 하더군요. 화면에서 느낀 차이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설경구의 노자도 좋았습니다. 흔히 떠올리는 사채업자의 무거운 이미지를 일부러 덜어냈다고 하는데, 그 선택 덕분에 두 사람이 주고받는 호흡이 살았습니다. 초반의 압박감도, 후반의 씁쓸함도 결국 이 배우가 만들어낸 온도였습니다.
결말에서 화살이 돌아옵니다
이 아래로는 결말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안 보신 분은 여기서 멈추셔도 좋습니다.
저는 초반 내내 문재를 응원하면서 봤습니다. 이름과 얼굴과 재산을 통째로 빼앗긴 사람이니 당연히 편을 들게 되지요. 그런데 마지막에 가서 그 전제가 뒤집힙니다. 문재도 결백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대학 시절 진짜 재능은 다른 쪽에 있었고, 문재는 그를 질투해 원고를 가로채 소설가로 데뷔했습니다. 거기에 헛소문까지 얹었고, 그 여파로 한 사람이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습니다. 자신의 삶을 빼앗은 상대는 사실 문재가 먼저 삶을 무너뜨린 사람이었던 겁니다.
그러니까 제목의 '들쥐'는 한 사람만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남의 삶에 올라탄 쪽도 들쥐였고, 남의 재능을 가로채 자기 이름으로 살아온 쪽도 들쥐였습니다. 심지어 문재가 노자에게 털어놓았던 과거 이야기조차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손질된 기억이었다는 게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등이 서늘했습니다. 결국 화살이 복수로 돌아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장면도 그래서 인상적입니다. 살아남은 문재는 자기가 진짜라고 증명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무너뜨린 사람의 행색을 그대로 걸치고 빠져나갑니다. 훔친 신분 위에 다시 올라타는 셈이지요. 그리고 문 두드리는 소리에 겁을 먹습니다. 이겼는데 이긴 것 같지 않은 결말이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낯설지 않았던 이유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남은 생각은 질투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모든 일의 시작은 질투입니다. 옆 사람이 나보다 낫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 마음 하나가 두 사람의 인생을 함께 무너뜨립니다. 한쪽만 망가진 게 아니라 둘 다 망가집니다. 복수한 쪽도 결국 자기 얼굴을 잃은 채 살다가 끝나니까요.
저는 이 구조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우리 사회의 공론장을 볼 때 종종 비슷한 인상을 받기 때문입니다. 서로 치고받고, 갈등이 갈등을 부르고, 화합이라는 단어는 구호로만 남고, 정작 남는 건 난장판인 상태 말입니다. 화합이 필요하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겁니다. 다만 의견이 근본적으로 다를 때 그 화합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에 대해서는 저는 회의적인 편입니다. '들쥐'를 끝까지 보고 나서, 이 작품이 개인의 이야기인 척하면서 사실은 그 질문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배우의 연기 자체를 보는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
✔ 선악이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 결말을 좋아하는 분
✔ 반대로, 중반 이후 긴장이 유지되는 촘촘한 스릴러를 원한다면 기대치를 조금 낮추시는 편이 좋습니다
정리하자면 저에게 '들쥐'는 앞부분이 유독 강했던 작품입니다. 중반의 헐거움은 분명히 아쉬웠지만, 마지막 한 회가 앞의 아홉 시간을 다시 보게 만들었습니다. 문재를 응원하며 보낸 시간이 결말에서 되돌아와 저를 찔렀거든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문재가 살아남은 결말을 승리로 보셨나요, 아니면 또 다른 시작으로 보셨나요? 저는 후자 쪽에 가깝다고 느꼈는데, 다르게 읽으신 분들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