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2009) 리뷰: 재수생의 겨울, 용산 4D 상영관에서 토루크 막토에 올라탔던 기억

좌석이 뒤로 젖혀지는가 싶더니 얼굴 정면으로 바람이 몰아쳤습니다. 화면에서는 붉은 익룡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있었고, 저도 모르게 팔걸이를 움켜쥐었습니다.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는 감각이 통째로 사라진 몇 초였습니다. 그 등에 올라타 있는 것은 화면 속 인물이 아니라 저였습니다.

오늘은 꽤 오래 묵혀둔 이야기를 꺼내려 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아바타」, 그중에서도 제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극장 경험으로 남은 어느 겨울에 관한 기록입니다.

재수생의 겨울, 용산의 4D 상영관

당시 저는 재수생이었습니다. 하루가 문제집으로 시작해 문제집으로 끝나던 시기였고, 극장에 간다는 것은 스스로에게 내주는 예외적인 허가에 가까웠습니다. 동행은 고등학교 동창 규훈이였습니다. 우리가 고른 곳은 용산의 4D 상영관이었습니다. 좌석이 움직이고 바람과 물이 나오는 상영관이 아직 흔치 않던 시절이라, 표를 잡았다는 사실만으로 며칠 전부터 들떠 있었습니다.

「아바타」는 2009년 12월 17일 국내 개봉했습니다. 제임스 카메론이 각본과 연출을 겸했고 샘 워딩턴과 조 샐다나가 주연을, 음악은 제임스 호너가 맡았습니다. 상영 시간 162분, 제작비 2억 3,700만 달러의 작품이었습니다. 결과는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전 세계에서 27억 8,796만 달러를 벌었고 대한민국에서만 1억 545만 달러가 나왔습니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국내 누적 관객은 재개봉을 포함해 1,362만 명입니다. 저 숫자를 볼 때마다 저 안에 제 표 한 장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 조금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토루크에 올라탄 몇 분: 여전히 갱신되지 않은 최고

주인공이 길들이는 붉은 대형 익룡의 이름은 토루크입니다. 그리고 토루크를 타는 데 성공한 사람을 나비족은 토루크 막토라 부릅니다. 전설에 가까운 호칭이자,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완전히 옮겨놓는 분기점이기도 합니다.

저에게 이 영화의 정점은 오직 그 비행입니다. 좌석이 기울고 바람이 몰아치는 공간에서, 저는 화면을 지켜본 것이 아니라 비행에 동승했습니다. 하늘을 난다는 감각이 눈이 아니라 몸으로 들어온 첫 경험이었습니다. 이후로도 체험형 상영관에서 여러 작품을 봤지만, 4D로 본 영화 중 최고 자리는 십수 년째 「아바타」가 지키고 있습니다.

스릴의 성격도 조금 특이했습니다. 위험한 대목에서 판단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무언가 날아들면 실제로 피하려 했고, 낙하할 때는 배가 내려앉았습니다. 놀이기구를 탈 때와 가장 비슷했는데,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었습니다. 놀이기구에는 없는 세계와 이야기가 그 안에 통째로 들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밤이 되면 발광하는 판도라의 숲, 공중에 떠 있는 산의 윤곽. 그런 화면이 웅장한 음악과 함께 밀려올 때 저는 완전히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잠들면 다른 몸이 깨어난다는 설정을 뒤늦게 붙잡았습니다

솔직히 털어놓자면 초반에는 설정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이 장치 안에 누워 잠들면 다른 몸이 깨어난다는 구조가 곧바로 와닿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변신 정도로 이해했다가, 두 세계가 몇 차례 오간 뒤에야 두 개의 몸을 번갈아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친 작품이 「공각기동대」였습니다. 의식과 육체를 떼어놓고 사고하는 이야기를 접해본 경험이 있었던 덕분에, 개념이 잡히자 오히려 빠르게 납득이 됐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영화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주인공이 판도라에 점점 더 오래 머물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임무 때문이 아니라 그쪽의 몸이 더 자유롭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읽혔으니까요. 걷지 못하던 사람이 뛰고 달리고 날아오르는 몸을 얻었을 때, 어느 쪽을 자기 삶이라 부를 것인가. 이 질문 하나가 후반부의 모든 선택을 설명해 줍니다.

상영이 끝나고 한 시간을 더 걸었습니다

불이 켜지고 밖으로 나왔을 때, 곧장 집으로 향하기가 아까웠습니다. 조금 더 걷다 가자고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저였습니다. 한겨울이었으니 추웠을 텐데 이상하게 추위에 대한 기억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걸으며 영화 이야기만 했고, 결국 도중에 버스를 타고 각자 흩어졌습니다.

오간 대화의 절반은 4D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위험한 대목에서 진짜로 몸을 피하게 되더라,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아찔했다. 이런 말을 표현만 바꿔가며 몇 번이고 되풀이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화면 이야기였습니다. 저렇게 아름다운 영상을 본 적이 없다는 데 둘 다 이견이 없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깊이 있는 대화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감탄을 계속 반복한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것이 좋은 영화의 증거라고 봅니다. 극장 문을 나서는 순간 끝나버리는 작품이 있고, 관객을 밖까지 데리고 나와 한참 붙잡아 두는 작품이 있습니다. 수험생 둘을 겨울밤 거리에 한 시간 넘게 세워둘 수 있었다면, 그 영화는 이미 제 몫을 다한 셈입니다.

✅ 이런 분께 권합니다
✔ 반전보다 압도적인 화면과 세계관에 끌리는 분
✔ 몸으로 체험하는 상영 방식을 좋아하는 분
✔ 개발과 원주민, 자원과 권력의 문제에 관심 있는 분
✔ 오래전 극장에서 받은 인상을 다시 확인해 보고 싶은 분

판도라에서 본 것은 익숙한 과거였습니다

극장을 나서며 제 안에 남은 결론은 한 문장으로 정리됩니다. 저 이야기는 이미 벌어졌던 일이라는 것.

기술적으로 앞선 쪽이 자원이 묻힌 땅에 들어갑니다. 그 땅에 살던 사람들을 문명이 덜 발달한 존재로 규정합니다. 협상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힘으로 밀어붙입니다.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에서 되풀이된 순서 그대로입니다. 지명이 판도라로, 종족 이름이 나비족으로 바뀌었을 뿐 저는 그 전개에서 낯선 미래가 아니라 익숙한 역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방식이 달라졌을 따름입니다. 오늘날에는 군대가 서 있던 자리를 관세와 수출 규제가 대신합니다. 기득권과 패권을 지키려는 다툼이라는 본질에서는 다를 바가 없다고 봅니다. 개봉한 지 십수 년이 지난 작품이 여전히 언급된다면, 이유가 화면 기술 하나만은 아닐 것입니다.

기록으로 남은 평가와 제 감상 사이

공식 기록도 짚어두겠습니다. 「아바타」는 제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촬영상, 미술상, 시각효과상을 받아 3관왕에 올랐습니다. 다만 작품상과 감독상은 후보에 그쳤고, 두 부문 모두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가 가져갔습니다. 아카데미를 휩쓸었다는 이야기가 종종 도는데 사실과는 다릅니다. 대신 제67회 골든글로브에서는 작품상(드라마)과 감독상을 나란히 수상했습니다. 아카데미 기록상으로는 「업」과 함께 최초의 3D 작품상 후보작으로 남아 있기도 합니다.

개봉 당시 비평 가운데는 이야기 구조가 익숙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습니다. 낯선 땅에 들어간 외부인이 그곳 사람들에게 동화되어 끝내 그들 편에 선다는 서사는 이전에도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근거 있는 평가라고 봅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그 상영관에 앉아 있던 저는 아쉬운 대목을 단 하나도 찾지 못했습니다. 스무 살 무렵의 저에게 「아바타」는 완결된 영화였습니다. 그 감상을 지금 와서 세련되게 손볼 마음은 없습니다. 당시의 판단 역시 제 기록의 일부이니까요.

현재는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작품의 절반은 좌석과 화면 크기가 만들어 냅니다. 작은 화면으로 처음 접하셨다면 아직 반만 보신 것입니다.

요즘도 자원 확보나 무역 갈등을 다룬 뉴스를 보다 보면 판도라의 숲이 잠깐씩 겹쳐 보입니다. 그럴 때면 좌석이 젖혀지던 감각과, 겨울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으며 같은 감탄을 반복하던 두 수험생도 함께 떠오릅니다. 언젠가 이 영화가 다시 체험형 상영관에 걸린다면 저는 표를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때는 규훈이에게도 한번 연락을 해보려 합니다.